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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에 잠들어 있는 의로운 한국인 이야기
복 있는 사람
2004. 8. 19. 20:11
몽골 초원에 잠들어 있는 의로운 한국인 이야기 |
[도깨비 뉴스] ![]()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시내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산언덕에는 한국인을 기리는 아담한 공원이 있습니다. 대암(大岩) 이태준(李泰俊·1883-1921) 선생을 추모하는 곳입니다. 몽골 초원에 잠들어 있는 의로운 한국인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초원에 잠들다 몽골의 어느 대학 정치학 교수인 몽골인이 “한국인을 추모하는 공원이 있는데 가보지 않겠느냐”며 데려간 공원에 들어서며 부끄럽더군요. 대암 이태준 선생. 이제껏 책에서 못 본 이름이었다는 변명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명색 몽골 기행에 나선 처지에 그래 이마저 모르고 왔다니 하는 자괴감이 컸습니다. 몽골인들이 아직도 기억하는 義人 이태준 선생의 약력을 2000년 한몽학회(회장 최기호)와 연세대의대 동은의학박물관(관장 박형우)이 세운 추모비 내용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대암 이태준 선생은 1883년 11월 21일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1907년 세브란스의학교(현 연세대 의대)에 입학해 1911년 제2회로 졸업했다. 선생은 김필순 주현칙과 함께 안창호선생이 만든 ‘청년학우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했다. 세브란스병원 인턴으로 근무하던 중 1912년 중국 남경으로 망명해 ‘기독회의원’에서 의사로 일하다 처사촌이 된 애국지사 김규식 선생의 권유로 1914년 몽골 후레로 가서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설했다. 특히 화류병 퇴치에 앞장섰고 몽골 마지막 황제 주치의가 되었으며 1919년에는 몽골로부터 ‘에르데닌 오치르’라는 최고 훈장을 받았다. 1921년 2월 당시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러시아 백군에 의해 피살당하니 38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선생의 묘는 성산인 버그트 산에 있다고 전하며 1980년 한국 정부는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뭉개진 비문 추모비의 뒷면을 살펴 보았습니다. 왼편에는 몽골어로, 오른편은 영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각기 한 부분이 뭉개져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러시아 백군’이라는 대목이었습니다. 이태준 선생을 살해한 사실을 숨기려한 것이 명백했습니다. ![]() 몽골 교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누군지 이런 짓을 했을 법한 세력이 없는가 하고. 그는 전에 몇 번 와봤지만 뒷면까지 살펴보는 이가 없어서 이렇게 된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짐작컨대 ‘러시아’인이거나 러시아와 관련된 사람일 것입니다. 추모비의 왼편에 묘비가 서 있는데도 추모비에는 ‘묘는 성산인 버그트 산에 있다’고 되어있어 기이하다 싶어 몽골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산맥이 버그트 산인데요, 러시아 백군이 산 속 어딘가로 끌고 가 살해한 뒤 버렸다고 합니다. 시신은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나라 잃은 몸으로 나라 안팎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머나먼 몽골 초원에까지 와 이국 군인의 더러운 손에 피살되고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비문마저 뭉개져 방치돼 있었고요. ▽친일과 반민족을 논하기 이전에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누구누구 아버지는 일제 때 무슨 일을 했다느니, 또 누구는 독립운동가의 직계가 아닌데 그런 척 했다느니. 의당 오래 전에 정리해야 했을 문제를 내버려둔 탓이겠지만 생각해보면 한심한 대목이 있습니다. 특정인을 표적으로 하는 이런 정략적 놀음에 모두들 눈이 멀어 있으니 말입니다. 한참 오래 전에 광복회를 취재했을 때 일입니다. 한 직원이 1920년대의 신문을 들춰 보이며 한숨을 내쉬더군요. 누가 언제 어디서 일본 헌병대와 총격전을 벌이다 숨졌다는 기사들이었습니다. 이름 없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10대, 20대의 항일독립투사들입니다. 당연히 이들은 대개 후손이 없었고 있다 해도 후손을 찾을 길이 없어 제대로 예우를 해주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는 것이었습니다. 독립유공자 지정을 받으려면 관련 ‘증거’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당시의 신문기사에 등장하는 이름은 무척 중요한 증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정작 후손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를 광고 등을 통해 알리면 좋겠는데 예산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친일과 반민족을 논하기 전에 지금 우리가 할 일을 하고 있는지 먼저 반성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친일(어찌 친일만이 문제가 되는 한국의 근현대사일까만)로 호강하던 자들을 집어내 반민족행위자 표지판을 붙이는 일, 속 시원하고 중요한 일이지요. 그렇지만 수없이 스러져간 애국지사의 후손을 찾아내 예우를 다하는 일은 어찌된 것입니까. 만주 일대에, 연해주에, 러시아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피살돼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을 저 불굴의 독립투사들과 박해와 가난에 시달리고 찌든 반세기를 이어온 그들의 후손을 살피는 일이 먼저가 아닐까요. 몽골의 대암 이태준 선생기념공원을 나서며 문득 공원 한 켠의 텐트 한 동이 눈에 띄었습니다. 예쁘장한 개집도 보였습니다. 얼핏 홈리스가 아닌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관리인이었습니다. 인구 270만 명 중 거의 100만 명이 몰려사는 울란바토르라 공원을 집삼아 지내는 이들이 없으란 법이 없어서랍니다. 한국의 애국지사 묘역을 지켜주는 몽골인 관리인. 뭉개진 채 방치된 비문도 그렇거니와, 애국독립지사를 밝혀내고 그들의 후손을 찾아내 늦었으되 이제라도 예우를 갖추는 일은 여전히 눈 밖에 두고 있는 한국사회의 실상을 안다면,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싶었습니다. 도쿄 = 도깨비뉴스 리포터 지안jian@dkb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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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9 [목] 도깨비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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