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시간 관리의 시작은 나의 존재 목적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시간 관리는 목적 지향적이어야 한다. 여러 가지 목적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사명이다. 인생의 모든 비전과 목표는 사명을 실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비전과 목표가 명확할 때에 일일 업무에도 의미 있는 방향성을 띠게 된다. 이 모든 것의 기반이 바로 사명이기에 효과적인 시간 관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사명’ 발견을 그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 |  |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여 그것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은 두 가지 점에서 아주 효과적이다. 첫째,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다. 또한 삶의 기쁨을 즐길 수 있다. 자신의 일이 곧 사명인 사람들은 일생동안 계속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계속하여 자신의 존재 가치를 업그레이드해 나간다. 사명을 발견하여 자신의 직업으로 삼으면 자신이 하는 일이 신바람 나는 놀이가 된다. 로버트 프로스트(시인)은 "나의 평생의 소원은 사명과 직업을 일치시키는 것이다“고 말했다. 사명자로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한껏 발휘하고 자신의 기질적인 특성과 과거의 경험들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온전히 누리는 비결이다. 삶을 온전히 누리는 자들의 인생에는 기쁨이 솟아난다. 어떤 것이 재밌는가? 우리가 잘 하는 것(재능)이 재밌다.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비결은 내가 잘 하는 것을 계발하여 직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재능을 발견하고, 그 재능을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생업으로 삼을 때 삶은 흥미진진한 놀이가 된다. 또한 자신을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어떤 것이 쉬운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것(기질적 특성)이 쉽다. 인생에서 성공을 얻는 비결은 과정에서의 고난을 모두 뛰어넘을 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자연스러워야 오래 지속할 수 있다. 자신만의 기질적 특성을 발견한다면, 그것을 재료삼아 자기 삶의 방식을 만들 수 있다. 그러므로 삶의 변혁과 인생의 도약을 꿈꾸는 이들은 자신이 가진 자원(재능)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또한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나는 어떤 목적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둘째,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전할 수 있다. 사명자로 산다는 것은 자아실현의 의미 그 이상이다. 사명자로 살아갈 때, 우리는 가장 온전한 형태로 사회에 공헌하게 된다. 자신의 가진 재능으로 일을 하거나 봉사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가장 잘 돕는 길이다. 내가 갖지 않은 것을 주려고 할 때 곧잘 탈진을 경험한다. 내가 가진 것을 줄 때에는 탈진이 아닌 행복과 풍요로움을 경험한다. 그 경험은 나를 더욱 새롭게 하며, 내가 걸어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베풂의 결과는 탈진이 아닌 소생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려는 선물은 나의 재능이나 기질적인 특성과 연결되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 나의 본질적인 부분이라면, 그 선물은 내 안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소생할 것이다. 본질이란, 그것을 더욱 그것답게 만드는 것이다.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드는 법을 발견하여 그것으로 세상에 공헌할 때, 그 공헌은 자연스러워지며 지속적일 수 있다. 탈진하기보다는 더 나은 자아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반면, 내 안에 있지 않은 어떤 것을 주려는 행위는 욕심이다. 이 욕심은 우리를 참자아가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결국 나도 경험하지 못한 실체가 없는 선물을 다른 사람에게 주려는 헛된 시도를 감행한다. 이러한 시도는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이 되지 않는다. 사명자는 이러한 두 가지 효과, 즉 자신의 삶을 기쁨으로 살아가는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 끊임없는 유익을 주면서도 탈진하지 않는 삶을 누린다. 나는 독서 강연을 통해 이 두 가지의 효과를 한껏 경험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진행되는 독서 강연이 있는 날은 한 달 중 가장 분주한 날이다. 다른 모든 강연에서의 내 역할은 강의만 전담하면 되는 강사다. 하지만 독서 강연은 내가 직접 모든 준비를 한다. 참가자 테이블을 셋팅하고, 간식을 준비하고, 유인물을 종류별로 출력하여 정리한다. 퀴즈를 맞힌 분에게 드릴 선물을 고민하고,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노트를 사러 문구점도 들른다. 일반과정과 전문과정이 격월로 번갈아가며 열리니 두 달 만에 강연하는 순서를 익히기 위해 PPT를 살짝 훑어보며 음악이나 동영상 파일의 링크가 제대로 기동하는지도 체크한다. 이렇게 강연을 준비하는 일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겐 당일 하루를 모두 투자해야 준비할 수 있는 일이다. 이 모든 과정은 전혀 힘들지 않다. 오히려 준비하는 시간 속에서 빛을 발하는 즐거움이 있다. 나는 독서 강연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정말이지 즐겁다. 11월 23일은 일반과정이 있는 날이었다. 이 날도 강연 20분 전까지 부지런히 움직이며 준비를 했다. 조금은 분주한 준비 과정도 즐겁다. 하나 둘 챙길 거리를 준비하는 동안 강연 시간이 가까워지면 기분 좋은 긴장감이 든다. 즐거운 준비과정이 끝나면 독서 강연이 시작된다. 나는 독서 강연을 진행할 때, 정말 신이 난다. 강연시간 동안 내내 스스로 강연을 즐긴다. 참으로 즐겁고 유쾌하다. 독서 강연은 나에게 ‘일’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완전한 ‘놀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서 강연의 수입은 신통치 않다. 올해 들어, 하루 종일 준비하고 3시간 동안 강연을 하면서 수입이 마이너스였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 강연을 할 때에도, 마치고 귀가할 때에도 무척 행복하다. 23일 역시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날도 일반 회사의 강연 수입의 50%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의 행복감은 최고로 달한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서 강연 진행은 나의 사명과 연결된다. 우리는 자신의 진수라 할 만한 가장 깊은 재능을 표현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자신의 사명에 충실해질 때, 삶은 의미로 충만하게 되고 행복감은 더욱 풍성해진다. 아무리 힘겨운 과정이 눈앞에 버티고 있다 할지라도, 나의 사명에 충실해질 때 과정의 힘겨움은 즐거움으로 승화된다. (독서 강연이 나의 사명인 까닭은 당연한 일이다. 탐구심이 강한 나는 독서를 즐겨왔다. 학습에 대한 관심이 많아 10년 동안 줄곧 학습을 해 왔다. 읽고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  | 가치는 지켜가는 과정만으로도 우리를 가치 있고 고결하게 만든다. 내 삶이 고결한 가치를 구현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러한 가치들을 열심히 추구한다면 분명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가치는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사명과 비전은 추구가 아니라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비전은 이루어져야 아름다운 그림이 되고, 사명은 실현되어야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사명은 우리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인생의 방향을 제시한다. 사명은 바라보는 것이 아닌 삶으로 누려야 하는 것이다. 사명은 ‘그림의 떡’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영원한 양식’이다. 사명은 오늘 내가 억지로 해야 하는 업무가 아니라, 의미와 보람이 가득한 하늘의 부르심이다. 누구나 자기 인생의 사명자로 살아야 한다. 인생에서 완전한 성공을 이루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당신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노력하라. 경험으로 보건대, 행복은 완전함보다는 온전함에서 오는 것 같다. 온전함이란 무엇인가? 나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세 가지 태도에서 온전함을 정의한다. 과거를 온전히 용서하고, 현재를 온전히 이해하고, 미래를 온전히 기대하라. 과거의 실수와 자신의 약점들을 온전히 용서하라. 학창시절의 나는 나 자신의 웃는 모습에 대하여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내 눈에는 웃는 모습이 참 못나게 보였기에 웃을 때마다 입을 가리고 웃었다. 과거에 대한 용서를 시도했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여러 가지 모습도 용서를 했다.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희석아, 너의 웃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게.” 그 이후, 나는 활짝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수년이 지나, 강연 피드백에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얘기에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용서는 치유와 회복을 선물해 준다. 모든 인생에는 능력과 밝은 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수와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온전함을 추구하는 것은 완전하지 않은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자신 있고 자랑스러운 면뿐만 아니라 싫어하는 것, 또는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것까지 포용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보다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된다. 현재의 나 자신의 모습과 살아가는 모양을 온전히 이해하라. 지금의 나는 환경의 산물이기보다는 자신이 과거에 선택한 것들의 총합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해하지 않은 채 미래를 꿈꿀 수는 없다. 찬란한 미래는 오늘의 나를 깊이 이해하고 내가 가진 것을 잘 발휘할 때 찾아오는 것이다. 현재를 온전히 이해할수록 보다 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앞으로 펼쳐질 희망찬 나 자신의 미래를 온전히 기대하라. 과거를 용서하고 현재를 이해한 자아는 이제 찬란한 내일을 꿈꿀 수 있다. 가지지도 않은 것을 발휘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기에 이 희망은 날마다 우리에게 가까워질 것이다. 재능이 당신의 삶을 의미로 가득 채울 것을 기대하라. |  | 사명은 궁극적인 존재이유이다. 사명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다. 사명은 자기 삶의 목적에 대한 감각이고,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다. 진정한 인생은 사명으로 존재한다. 빅트로 위고는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한번도 진정으로 산 적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다.”라는 말을 했다. 진정으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사명을 발견해야만 한다. 사명이야말로 인생의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사명은 "내가 왜 살아가는가?"이고, 조직에서는 "나는 왜 이 조직에 있는가?" 이다. 메리 제인 세퍼드는 유명한 기업체를 설립하지도 못했고, 세상을 바꾸어 놓을 만한 기술을 개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숭고한 사명을 좇는 삶을 살았다. 그녀가 추구한 사명, 즉 건강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는 것은 유명한 사람들의 사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었다. 그녀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랑의 빛을 비추어 주는 존재였다. 그녀의 가족은 직계 혈육으로만 제한되지 않았다. 남편 해리는 그녀를 성자라고 불렀고, 아들 찰스는 자기 어머니를 일컬어 자기 인생에서 타인에 대한 연민을 발견하도록 도와준 위대한 스승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사랑과 연민이라는 자신의 중요한 가치를 발견했다. 이런 가치와 열정을 합쳐서 숭고한 삶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이뤄냈다. 그녀는 자신의 사명과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일치시키려고 깊이 생각했다. 자기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모두 옆으로 치워놓거나 피하곤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녀는 ‘친구와 가족으로 이루어진 마을’ 형태를 가진 사랑의 커뮤니티를 유산으로 남겨 놓았다. 그녀가 68세의 나이로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 아들 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하러 온 일을 모두 해냈단다.” 사명은 인생의 방향이고, 존재 이유이다. 사명은 존재의 동기를 극대화하고 열정을 불러온다. 열정은 어떤 일이 하고 싶어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무언가에 미쳐서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끓어오르는 마음이다. 사명을 발견한 자는 그 사명을 이루어 가는 기쁨에 겨워 거룩한 조바심을 가진 자들이다. 거룩한 조바심은 늦은 밤까지 잠 못 들며 뭔가 하나라도 더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조바심을 지닌 자들은 하루의 최선을 다한 후에는 편안히 잠을 청할 줄 안다. 이것이 밤늦도록 무언가에 탐닉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삶의 방식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머리를 베개에 뉘일 때 욕심을 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최선을 다한 하루의 완성은 당신이 눈을 붙이는 순간이 아니라, 당신이 편안히 잠들어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 때문에 신의 은총을 믿고 평온하게 잠들자. 사명을 발견하는 정말 중요하다. 사명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삶을 찾아 주기 때문이다. 당신이 일을 아닌 사명을 찾을 때 행복해지고 열정을 얻을 수 있다. 사명 지향적인 삶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놀라운 일들을 펼쳐 보일 뿐만 아니라, 활력과 기쁨을 안겨다준다. 당신에게 질문을 던져라. 그리고 손경구씨가 말한 다음의 열망을 해결하라. “모든 인생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공통적인 열망은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을 이루고 싶어 하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에 있는 이 깊은 열망이 해결되지 않는 한 다른 모든 성취는 허무한 것이 되고 만다.” 어떤 일을 성취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당신 삶은 결코 성숙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성취가 성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큰일을 이루기보다는 의미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다. ‘어떤 일’이 아니라, ‘당신의 사명’을 위해 힘차게 전진하라! 이때 성취를 넘어 당신의 사명을 완수해가며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  | 알고 지내던 대학원생의 논문 작성을 돕다가 어느 프랭클린 플래너 유저의 사명서를 보았던 적이 있다. 다음과 같은 10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각의 문장마다 약간의 추가적인 설명이 곁들어 있었다. 01.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02. 나는 믿음직하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03. 나는 사려 깊고, 배려를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04. 나는 기본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05. 나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06. 나는 건강한 사람입니다. 07. 나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노력하며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08. 나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입니다. 09. 나는 사교적인 사람입니다. 10. 나는 아름다운 말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사명이 아니다. 사명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들을 모아 둔 리스트가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려는 희망만으로는 사명서가 될 수 없다. 사명서에는 누구나 추구하고 싶은 일반적인 도덕적 가치가 아닌 자신만의 삶의 목적이 드러나야 한다. 사명서는 미래 지향적인 동시에 존재 지향적이어야 한다.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갈망, 미래의 모습 등이 담아야 한다는 뜻이다. 존재 지향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재능, 기질, 어떤 일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자신의 본질을 담아야 한다는 뜻이다. 위의 사명서는 존재 지향적인 부분에서 0점이다. 사명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다. 사명은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영웅들의 인생을 흉내 내어 자신이 가지지 못한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다. 사명서를 만들기 위해서 위인들의 삶을 조사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들여다보며 성찰해야 한다. 10가지 자연법칙』이라는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내가 추구하고 싶은 최고의 이상을 세워두고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세워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은 비현실적이었고 진정한 나 자신을 왜곡하는 것이었다. 이상을 세울 때나 전략을 수립할 때, 내가 가진 재능과 기질적인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명은 나의 안에서 밖으로 뻗어 나와야 하는 것이다. 사명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의 갈망만으로는 사명을 발견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은 수년이 지난 후, 파커 팔머의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듣고 나서다. “젊은 시절 나는 ‘네 인생의 목소리를 들어보아라.’라는 말을 이렇게 받아들였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만들어 내어 그것이 내 것이든 아니든 우격다짐으로 나의 인생에 꿰맞추어야 하는 것으로 말이다.” |  | “저는 일자리를 찾지 않습니다. 제 사명에 맞는 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공부에 확신이 들지 않는가? 아니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아닌지조차 구분조차 안 가는가?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우리에게 기분 좋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바로 ‘신바람’이다. 나는 지금 신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또한 독서 강연을 하며, 나는 그야말로 즐겁고 신바람난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사명을 발견하면 내가 하는 일이 신바람 나는 놀이가 된다. 5년 전, 입사 동기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다.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아.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 때에는 정말 일을 그만 두고 싶더라구.” 힘들 때의 푸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친구가 힘들어할 때에 필요한 것은 충고가 아니라 공감이다. 하지만, 자신의 직장 생활에 대해 만성적 푸념과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충고를 하고 싶기도 하다. 어쩌면, 그들은 사명이 아닌 생존을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생존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시간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을 둘로 구분한다. 하지만 사명을 발견한 사람은 이 두 가지 일을 통합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한다. 이들은 모두 일찍이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여 ‘일자리를 찾습니다.’ 라고 구직 광고를 낸 것이 아니라, ‘나의 사명에 맞는 자리를 찾습니다.’라고 사명 광고를 낸 사람들이다. 사명을 찾은 사람들은 일을 생존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행복한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일은 그만 둘 수 있지만, 사명은 그만 둘 수가 없다. 사명은 매일 같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결코 끝나지 않는 일이다. 그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에 사명을 그만 둔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돈을 어느 정도 벌었으니, 이 일은 그만 두고 여행을 다녀야겠어요.’라고 말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명은 돈을 벌었다고 그만 두거나 보상을 받았기에 그만 두는 것이 아니다. 사명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느끼고 사명을 이루어감으로 우리만의 존재 양식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사명자로 살아가는 것은 기쁨 넘치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브루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서른 세 살의 은행원이다. 그는 은행 업무를 끔찍이도 지겨워했으나, 두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 가정의 유일한 수입원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 브루스가 자신의 열정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얻어 낸 답은 ‘기차’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기차를 동경해 왔다. 그래서 각종 모형 기차를 만들기도 하고, 기차 관련 서적을 섭렵해 왔다. 하지만, 지금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엔 용기가 부족하다. 하지만, 직업 상담을 받고 난 후, 그는 아내가 화낼 것을 각오하고 직업을 바꾸어야겠다고 아내에게 얘기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그 다음날 그는 재킷 호주머니 속에서 ‘희망을 가지세요, 여보!’라고 적힌 아내의 편지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이 선택한 분야의 가장 밑바닥이라 할 수 있는 열차 차장부터 시작했다. 곧 승진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현재 그는 주요 철도 회사의 감독관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전 직장에서의 경험과 철도에 대한 자신의 끊임없는 열정 덕분에 그는 비교적 빨리 승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성인이 되어 일하면서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해 보기는 난생 처음’이라고 말한다. 이 얘기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을 찾을 때, 우리는 행복과 안정을 동시에 얻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중요한 것은 브루스가 계속 은행에 남아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브루스는 은행에서는 실패한 직장 생활을 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분명 성공한 직장인이 되었다. 이 두 사람은 분명 동일인임을 기억하라. 혹시 당신의 직장 생활이 행복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브루스의 기차와 같은 당신만의 사명을 찾는다면 당신 역시 브루스처럼 난생 처음 느끼는 편안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사명을 찾기 위해서 여러분의 직장을 그만 두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여러분이 있는 그 곳에서 승부를 걸어야 사명을 잘 찾을 수 있다. 몰입의 삶이 있어야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은 드림레터 2편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란다.) 나의 사명 중의 하나는 ‘배움’이다. 이 말은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배움을 끝내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배움을 끝내는 것도 아니다. 배움을 사명으로 가진 나는 당연히 평생 배우기를 갈망할 뿐 아니라 평생 학습이 내 삶의 방식이 될 것이다. 나의 사명은 대학 졸업장을 따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나누는 것이다. 따라서 내게 더 소중한 것은 졸업장이 아니라, 배움의 장이다. 배움을 사명으로 가졌기에 배움을 향한 나의 에너지는 늘 식지 않는다. |  | 자신의 인생에 벌어진 일들을 읽어내는 동시에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도를 통하여 사명자가 될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생은 앞을 향해 살게 되지만 뒤를 돌아볼 때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사명 발견은 가장 먼저 재능을 분별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직업선택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일자리를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명에 맞는 자리를 찾아야 할 일이다. 당신의 존재에 걸맞은 일을 하라. 그 일이 단순한 업무가 아닌 의미로 가득 찬 당신의 존재 자체가 될 것이다. 재능을 분별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격 유형 테스트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것은 개개인의 특성을 발견하기에는 너무나 광범위하고, 일반적이다. (개인의 특징을 발견하는 데에는 마커스 버킹엄의 스트렝스 파인더가 더 좋을 것이다.) 스티븐 코비는, 사명은 하룻밤에 걸쳐 간단히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사명은 자신에 대한 성찰과 주의 깊은 분석을 통한 생각이 거듭되어야 알 수 있다. ‘사명은 간단한 한 두 문장으로 기술되어야 한다.’는 신화로부터 자유로워져라. 사명은 명료함과 신비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사명에 대한 이러한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이해해야 한다. 사명을 발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명료함을 원하여 한 두 문장으로 압축해 보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러한 대부분의 시도는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거나 왜곡시키는 결과를 불러온다. 당신의 사명을 간단하게 표현하고 싶은 욕심을 버려라. 사명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당신의 사명을 발견하기 위해 다음의 7가지를 하나씩 들여다보라.
1. 자신의 재능 (은사, 강점, 달란트) 사명서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일을 잘 하는지 발견하는 것이다. 유난히 학습속도가 빠르고 특별히 방법을 배운 적도 없는데 잘 하는 것이 있지는 않은가? “내가 가진 재능과 강점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는 이 질문에 곧장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자주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변하곤 한다. 새롭게 익힌 기술이 있거나 성품이 성숙했다는 느낌이 들면 정말 기분이 좋아진다. 톨스토이의 말대로 정말 ‘최상의 행복은 1년이 지난 뒤에 연초의 자기보다 더 좋아졌다고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2. 마음 (마음의 부담감이 느껴지는 영역) 왠지 나에게 맡겨진 것 같은 부담감을 느끼는 영역이 있다. 어떤 이들은 모임이 끝나고 얼굴이 어두운 사람들의 표정을 잘 읽어낸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음을 직감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에게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사명이 있는지도 모른다. 여러분이 특히 관심이 가거나 마음에 자꾸만 걸리는 주제는 무엇인가?
3. 기질적인 특성 개성과 기질은 자신의 독특함이고,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을 이루는 요소다. MBTI 테스트를 통해 나오는 결과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내가 이 테스트를 통하여 알게 된 나의 기질적은 특성은 이렇다. 나는 “어디에서나 가능성을 모색하며, 다른 사람의 변화와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으며 세상을 살아간다. 우호적이고 충동적이고 창의적이며 쾌활한 성격이다. 가족과 친구를 우선으로 생각한다.” 또한 어떤 일에서나 의미를 찾아내고, 아이디어로 움직이는 사람이다. 하지만 세세한 것을 보지 못하는 편이어서 물건을 어디에다 두었는지 몰라 찾아 헤매곤 한다. 이런 기질적인 특성 중에 긍정적인 것들이 사명과 연결된다.
4. 갈망 (바라고 동경하는 것) 평소에 동경하고 바라던 일들을 찾아보라. 아마 이것은 여러분들의 강점이 될 가능성이 많다. 어떤 일을 오랫동안 동경하게 되면 대뇌의 신경생리학적 구조가 그 분야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발달되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의 바람과 동경을 잘 점검해 보는 것은 유익할 것이다.
5. 경험 (고난, 몰입, 성공의 경험) 우리 영혼의 깊은 곳에는 인생의 목적에 대한 과거의 암호들이 숨어 있다. 과거의 기쁨과 슬픔, 과거의 작은 성공과 실패들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사명자의 삶으로 들어갈 수 있다. 고난 : 어떤 힘겨움을 경험하고 나면 그 힘겨움에 대해서는 잘 알게 된다. 물론, 그 힘겨움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이겨낸 이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인간은 고난을 겪은 만큼 성숙한다."는 간디의 말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같은 힘겨움을 경험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될 수 있다. 고난의 경험 속에 사명이 깃들어 있다. 몰입 : 나는 주의가 산만하여 집중력이 약한 편인데, 강연을 준비하거나 글을 쓸 때에는 2~3 시간, 혹은 그 이상도 책상에 앉아 있다.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할 지경이다. 여러분들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어떤 일이 있지는 않은가? 몰입의 경험 속에 사명이 잠자고 있다. 성공 : 과거의 작은 성공을 찾아보라. '아니.. 그거 뭐 하찮은 성공인데 뭘..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라고 생각하지 마라. 억만장자 스티븐 스콧의 말을 기억하라. "이 세상에 하찮은 성공은 없다. 우리가 성공했던 모든 일은 소중하며, 그 것은 미래의 성공을 향한 중요한 밑바탕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승리 속에 당신 인생의 목적인 사명이 숨어 있다.
6.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의 피드백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의 칭찬과 조언을 그냥 흘려보내지 마라. 다른 사람들이 때로는 나보다 더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언젠가 저에게 후배 한 명이 A4 한 장을 건넸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저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저에 대하여 아시는 바대로 솔직하게 적어주세요. 몇 가지 질문에 정성스럽게 답변해 주시면 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며, 어떤 일을 잘하는지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에요." 구체적인 질문이 모두 기억나진 않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작성하는 데에 꽤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답을 작성하며 본인에게 큰 도움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들도 한 번 해 보시라. 많은 이들에게 유인물을 나누는 것보다는 자신을 잘 아는 소수의 지인들에게 부탁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7. 구원 (회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사명이라는 단어보다 ‘소명’을 사용하기를 권한다. 나는 줄곧, 사명을 ‘소명’이나 ‘목적’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지만, ‘사명’은 ‘소명’에서 풍겨지는 청지기직의 느낌을 분명히 가지지 못하는 것 같다. (실제로 개신교의 역사를 보면, 소명에서 ‘부르심’의 의미를 제거해버렸다. 그래서 ‘위대한 부르심’은 ‘평범한 일’로 전락하고 말았다.) 소명을 고민하는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다. 왜 나를 그 계획에 부르셨는지에 대한 그 분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파커 팔머는 “내가 살아가면서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말하기에 앞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해주는 내 인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고 했다. 소명(vocation)의 어원이 소리(voc-)에 있음을 기억하라. 진정한 소명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에서 온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과거를 돌아보며 단지 그것만을 통하여 나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살피는 문제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앞서 언급한 6가지를 그 분의 부르심 위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는 영원히 자기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이상의 7가지 키워드를 고민해 보라. 어떤 테스트에 의지하기보다는 위의 내용들에 대해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지한 성찰의 과정 없이 사명선언문을 만들어주는 한 권의 책으로 손쉽게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진지한 고민 없이도 사명선언문을 수월하게 작성할 수 있다고 말하는 책들은 사명이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 무시해 버린 오류를 범한다. |  | 사명선언문은 자기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나타내는 문서다. 사명선언문은 우리가 의사를 결정하고 행동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지침이 되는 개인 헌법의 역할 해 준다. 『기적의 사명선언문의 저자인 로리 베스 존스는 이렇게 정의했다. "사명선언문은 인생의 항로를 발견하고 항해를 개시하고 그것을 평가하고 수정하고 다시 항해를 개시하는 데 불변의 기회 틀 역할을 하며,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종국에 어떤 사람이 되는 지 등과 같은 삶의 현상들을 구체적으로 조정하고 감독한다." 사명선언문은 다음과 같은 3가지의 요소로 이뤄진다.
- 사명 선언문의 3요소 : 사명서, 역할 지각, 지배 가치 사명서는 앞서 언급한 7가지의 키워드를 성찰하며 알게 된 나의 존재 이유를 설명한 글이다. 나의 2007 Version 사명서는 다음과 같다. 나의 사명은 행복 및 지식 유통업자, 착하고 충성된 종, 가정의 리더가 되는 것이다. “나는 지식과 행복을 널리 전하는 유통업자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지식 유통에 힘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바로 곁에 있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행복 유통에 힘쓴다. 지식 유통업자로서 참된 삶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사람들에게 막힘없이 전한다. ‘독서 → 생각 → 실천’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지적 생산물은 글쓰기와 강연을 통해 사람들과 나눈다. 말씀의 진리가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에 동참한다. 행복 유통업자로서 행복한 삶의 의미와 궁극적인 성공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노력한다. 행복과 지식을 유통하기 위해 자기 경영에 힘쓴다. 내게 주신 은사를 이웃을 섬기는데 아낌없이 사용하여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목적을 온전히 이루고 떠난다. 코끝에서 호흡이 끊어진 후, 하나님께 들고 갈 수 있는 참된 소유가 풍성한 삶을 산다. 이것은 '착하고 충성된 종'을 지향하는 삶이다. 가정의 리더로서 일과 가정의 균형 감각을 잃지 않는다. 신뢰와 사랑으로 아내와 함께 믿음의 가정을 가꾸어가는 영적 리더가 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사명을 발견한 사람들을 자신의 사명을 어떻게 이뤄갈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 고민은 자신의 인생을 지배할 가치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평생 사명에 따라 사는 삶은 가치관을 바꾸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명을 이룰 수 있는 가치들을 찾아내어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사명을 실현할 수 있는 가치들의 우선순위대로 시간을 관리해야 한다. 사명에 따른 지배가치까지 정립하게 되면 인생의 나침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달려야 할 방향을 아는 사람들은 의미 있는 인생의 출발탄을 쏘아올린 자들이다. 자신의 방향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사람보다 효과적인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똑똑하거나 부유한 사람이 아니라 사명에 인생을 던진 사람이다. (보보의 지배가치는 앞선 글에서 소개한 적이 있기에 본지에서는 생략한다.) 사명선언문에 역할 지각이 들어가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사명이란 단어를 재능의 진수를 지칭하는 데에만 사용하는 실수를 막아준다. 인간의 이기심은 ‘재능’을 자신의 인생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명 의식은 재능이 ‘타인을 위한 우리의 것’임을 깨닫는다. 사명은 우리의 과업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서 다차원적이며 인생의 여러 관계까지 포함해야 한다. 우리의 인생은 직업적인 과업보다 훨씬 풍부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에게는 아들이고, 손자다. 와우팀원들의 팀장이고, 회사에서는 동료이자 후배다. 이런 여러 가지 역할들을 잘 해내고 싶다. 인생의 80세 생일이 되면 나는 그들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것을 사명선언문에 포함시켜 두면, 나의 재능을 이기심에 희생시키는 일이 사라질 것이다.
- 나의 가족들 “당신은 나를 진정 사랑해 준 따뜻한 남편이었어요. 저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결혼할 거예요.” “내 아들 희석아, 엄마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넌 참 잘 자라나 주었구나. 이제 너와 함께 할 수 있구나. 고맙다. 희석아” “자상하고 인격적인 아빠 사랑해요. 아빤 진정 내 삶의 모델이었어요. 아빠를 존경해요.”
- 나의 친구들 “희석이 널 만난 건 내게 큰 행운이었어. 넌 우리들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우정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친구였어. 부디 편안히 잠들어라. 네가 보여준 우정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 그리스도인 “이희석 형제님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준행하기 위하여 평생을 노력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었어요. 그가 하루를 더 살았으면 하루만큼 예수님께 닮아갔을 거예요.” |  | 부르시는 분이 없다면 소명도 없음을 절대로 잊지 마라. 오스 기니스는 소명을 이렇게 정의했다. “소명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결정적으로 부르셨기에, 그분의 소환과 은혜에 응답하여 우리의 모든 존재, 우리의 모든 행위, 우리의 모든 소유가 헌신적이고 역동적으로 그분을 섬기는데 투자된다는 진리다.” 그리스도인의 인생에는 세 번의 위대한 초청이 있는데, 첫째는 구원으로의 초청이고, 두 번째의 소명으로의 초청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영생으로의 초청이다. 구원으로의 초청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하게 받은 우리의 일차적인 소명이다. 구원받은 자들은 모두 동일한 소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반적인 소명이다. 소명으로의 초청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차적인 소명이 된다. 재능에 기반한 자신의 직업적 소명이 바로 이차적인 소명이다. 이에 대한 오스 기니스의 설명은 명확하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의 일차적인 소명은 그분에 의한, 그분을 향한, 그분을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 일차적으로 우리는 누군가(하나님)에게 부름 받은 것이지, 무엇(어머니 역할이나 정치나 교직)이나 어디(도시 빈민가나 몽골)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이차적인 소명은,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주권적인 하나님을 기억하고, 모든 사람이,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서 전적으로 그분을 위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살고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가정주부나 법조인으로 혹은 교직으로 부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이 이차적인 소명으로서 적절한 표현이다.” 일차적 소명과 이차적 소명 사이의 구별은 중요한 교훈을 준다. 먼저는 두 소명을 함께 붙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둘이 올바른 순서에 놓이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기독 청년들이 소명을 생각할 때 재능만 기억하고 청지기직은 잊어버리는 실수를 범하곤 한다. 우리가 소명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첫째 것이 첫째 자리를 지키도록, 즉 일차적인 소명이 항상 이차적인 소명 앞에 오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일차적인 소명이 이차적인 소명으로 반드시 연결 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차적인 사명을 받지 못했다고 하여 아무 것도 행하지 않은 소극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명이란 모든 사람이,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일차적인) 부르심에 반응함으로써 자신의 (이차적인) 부르심을 성취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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