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08년 큰 모토는 바로, <<<2008년엔 "당신 없이 무엇을 하기보다는 당신과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 - 「예수님처럼」, 맥스 루케이도 著, p.35 >>>로 정했었다. (http://blog.paran.com/ruthchoe/23977692참조)
아래 글을 읽다보니 일맥상통하는 좋은 글이어서 붙여본다.
글 출처: http://paper.cyworld.com/wildparking/23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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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보다 은혜가 먼저입니다.
글/ 박민진
성경을 읽다보면 우리는 구약의 경우 상당부문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반면 신약은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성경의 모든 사건들은 사실이며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 분명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역하실 당시 주님의 몸소 보여주신 사건들은 우리의 삶에 귀중한 인사이트, 즉 통찰력을 주기 위한 상징적 사건이 되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10장 38~42절의 마르다와 마리아 사건 역시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참 다양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에 없는 내용을 적절한 바운더리 내에서 상상하며 묵상의 세계를 더 풍성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오늘날의 교회를 향한 하나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하루는 마르다가 예수님이 자기 마을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모셔 들였고 장정들을 극진히 대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동생 녀석 마리아는 예수님 발아래 앉아 말씀만 듣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참다못해 예수님께 마리아를 나무라달라고 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몇 가지 혹은 한 가지만해도 족하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야기의 길이만큼이나 이 이야기는 싱겁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으로 이 시대에 맡겨진 일들 앞에 최선을 다 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일 예수님께 한 끼 식사를 대접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우리는 일 년치 연봉을 모두 쏟아 부어서라도 근사한 한 끼 식사를 예수님께 대접할 것입니다. 하물며 마르다는 얼마나 극진히 식사를 준비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어쩐 일인지 마르다의 열심은 예수님께 그리 칭찬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당황스러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바쁜 일상에 몇 가지만 집중하자는 식의 적용을 도출해내기도 합니다. 물론 좋은 해석과 적용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좀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위해 본문의 사건은 예수님이 어떠한 상징적 역할을 배정해서 보여주신 사건이라는 점을 전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초대교회와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시스템 같은 하드웨어의 차이도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바로 신자와 불신자의 문제입니다. 초대교회는 믿기 때문에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교회는 사람을 일단 교회에 들여놓고 봅니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고는 말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교회 내에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진짜 신자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교회에 처음 오는 구도자들, 즉 입교하지 않은 이들에게 신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복음보다 ‘적응’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이 구도자들에게 사역이라는 짐을 지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갈래로 갈립니다. 탈진하거나 일 자체를 즐기기 위해 교회에 다니는 것입니다. 사실 신자들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지 못한 사람들은 구도자와 마찬가지의 탈진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마르다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모셔 들였습니다. 여기서의 집은 그녀의 마음, 즉 예수님이 거하시는 집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최초로 한 일은 열심히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마리아는 어땠습니까?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은혜를 누렸습니다. 결과는 즉각적이었습니다. 마르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예수님을 위해 일하는데 왜 저 녀석을 일하지 않는 거야?’ 혹시 누군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마르다는 묘한 자기 의를 가지고 마리아를 정죄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구도자나 초신자가 하나님의 집, 즉 교회에 나왔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은혜를 받는 일입니다.
교회에 이제 막 나가기 시작한 이들이나 교회를 꽤나 다녔다고 생각하는 이들 모두 새로운 공동체를 만나게 되면 습관적으로 먼저 일을 찾아다니는 버릇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을 찾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십시오. 저는 여러 공동체를 직간접적으로 겪으면서 마르다와 같이 은혜는 못 누리고 일만 하다가 지체들을 향해 냉소적인 정죄의 화살을 쏘아대는 이들을 여럿 보아왔습니다. 뭘 먼저 하려고 들지 마십시오. 그냥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누리십시오. 그리고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새로 온 사람들에게 사역의 짐을 ‘적응’이라는 이유로 무작정 지우는 것을 지양해야할 것입니다.
저는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고 말 하는 분들을 자주 보아왔습니다. 믿음이 생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기본적으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하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또한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따라서 믿음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친밀하게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간들을 사역으로 빼앗기게 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너무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다는 모순 속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늘, 새롭게 공동체에 들어온 이들이, 들어오자마자 사역을 하려 할 때, 만류하는 편입니다. 특히 초신자나 구도자의 경우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것은 영혼을 죽이는 일입니다. 아니 그보다 예수님과의 사이를 벌려놓은 일입니다. 사역은 은혜를 누린 후에 해도 충분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배의 자리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공허감을 느끼지 못하며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은혜를 누리는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그 때 발견하게 되는 은사들로 주님의 일에 쓰임 받으십시오.
마리아는 그 좋은 편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의 향유옥합을 깨뜨림으로 예수님을 향한 완전한 헌신을 표현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당장의 상황만을 놓고 볼 때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사역도 은혜도. 모든 것을 다 잃은 것입니다.
이 시대는 마리아보다 마르다가 더 많은 것 같아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물론 교회가 지나치게 많은 사역팀을 만들고 그렇게 길러내는 이유도 있겠지만 사람들 역시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에 대한 유진 피터슨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너무 적게 일하는 것을 들킬까봐 대단히 걱정한다는 것이다. 아무 일도 안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복음에 합당한 일거리일 때가 많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사실 ‘하지 않음의 능력’입니다. 다시 말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공동체 안에서 지체들과의 만남을 통해 성령님의 충만한 교통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신앙을 추구하라는 말은 지금 당장 교회 사역을 내려놓고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다는 핑계로 우리의 야망을 위해 야생마처럼 달리는 태도를 멈추라는 말입니다. 일로 우리 마음의 공허감을 채우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 공간은 오직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 채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지금의 사역을 제해 버려도 여러분은 공허감 없이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친밀하게 만나는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까? 그분의 은혜만을 갈망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불행히도 그렇지 못한 지체들을 꽤나 보아왔습니다. 특별히 젊은 시절 청년들이 추구해야 할 것은 무대에 얼마나 자주 섰고 몇 명을 통솔해 본 리더십이며 얼마나 많은 일을 해보았는가가 아닙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주님과 동행하고 성도 안의 교통을 맛보아 아는 것, 그것이 이 시대가 추구해야 할 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상황을 초월하는 은혜’를 맛보아 아는 것이 생명입니다.
은혜를 누리는 것은 항상 사역을 앞섭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일보다 은혜가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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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은 바로 나의 14년 딜레마였다.
3년 전.. 주일에 교회에서 섬기던 교육전도사 사역을 내려놓고..
현재 섬기는 디딤돌교회에서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밑에서 은혜를 만끽하고 누리고 있다.
사실, 현재까지 만 14년, 15년째 직장으로 일하고 있는 어린이전도협회 사역 안에서 딜레마가 컸다.
정말 힘든 세월을 보내왔다.
나의 리더들..이 거의 일중독자분들이셨고..;;; 나도 모르게 나도 그렇게 적응이되어 닮아
나 스스로도 모르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새해부터 결심을 여러가지 했다.
오늘, 저 위의 글을 읽는데.. 제목부터 눈에 띄었고 역시 읽어보니 정말 촌철살인의.. 내 마음에 다시 촉구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린다.
승리하자.
일보다 은혜가 먼저이다.
이것을 다시금 일깨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것을 이제라도 내 삶에 적용해보자.
내가 생각하기엔, 그간 일은 정말 후회없이 실컷 질리도록 한 것 같다.
이젠 그렇게 살지 말자!
은혜를 누리며..
여유를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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