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읽어 준 이 간결한 글만큼 지식인의 단호한 자세를 피력한 글을 나는 이제껏 알지 못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글) 실존적 위험을 무릅쓴 지식인들의 용기가 떠오른다. 위험 앞에 파르르 떨릴 만큼 그들이 나약하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육신처럼 불안한 그들의 미래가 그 떨림을 닮았다는 말이다. (보보의 첫 번째 생각) 또한 지성인으로서 폐쇄성이 아닌 열린 마음을 갖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성실함이 떠오른다. 떨림을 가진 채 한 점을 지향하는 지남철의 모양은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지지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또 다른 ‘진리의 길’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지식인의 관용을 닮았다. 한 곳에 집착하여 다른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폐쇄성 따위와는 거리가 먼 모습 말이다. (보보의 두 번째 생각) 지남철의 떨림을 지켜보니 자신의 비전을 향한 눈부신 떨림이 떠오르기도 한다. 나는 지남철이 지닌 방향성을 갖고 있는가? 나는 어디를 지향하는가? 나는 지남철이 지닌 떨림을 갖고 있는가? 나는 그 지향점 때문에 떨림을 경험하고 있는가? 떨림이 없는 방향은 비전이 아닌 한낱 꿈에 불과하고, 방향이 없는 떨림은 의미 없는 흥분이나 동요에 불과하다. 문득 이윤기 씨의 동인문학상 수상 소감이 떠오른다. "하고 있는 일, 살고 있는 삶에는 지금 네 피가 통하고 있는가? 너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의 품삯이 아닌 일 자체, 그 일의 골수와 회로애락을 함께하고 있는가?" (보보의 세 번째 생각) 오늘은 이 세 번째 생각에 관한 글입니다. 내 삶의 방향을 찾기 위한 두 가지 키워드 몰입과 성찰에 관한 이 글이 여러분들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몰입은 성찰의 재료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을 사랑하는 법을 발견하라. 그러면 삶의 질이 높아질 것이다. 니체의 이 말은 삶으로 경험하지 않더라도 동의하게 된다. 그런데,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뭔가? 나는 그것이 몰입과 성찰이라 믿는다. 이것 뿐만은 아니겠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발견하기 위하여, 진짜 자기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두 가지 키워드다. 몰입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나는 강연 때마다 종종 두 가지 질문을 한다. 첫 번째 질문, “여러분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십니까? 다시 말해, 행복감을 느끼십니까?” 이 질문에는 20~30%만이 손든다. 참 신기하게도 이 수치는 참가자의 연령과 직업이 바뀌어도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 질문, “여러분들은 지금 하고 있는 최선을 다하고 계십니까? 가끔씩 몰입을 경험합니까?” 손을 들지 않는 이들 중에 ‘즐거워야, 행복해야 몰입하지 어떻게 좋아하지도 않는 일에 몰입을 합니까?’라고 묻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생각, 아니 나의 믿음은 이렇다. 몰입하지 않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없다. 몰입은 행복을 불러온다. 나는 이러한 생각으로 강연을 이어간다.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놓치는 것입니다. 행복하기 때문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몰입하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지금의 일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바로 지금 계신 그곳에서 승부를 거십시오. ‘지금 여기’에서의 승리가 없으면, ‘언젠가 거기’에서의 승리도 없습니다. 최소한 6개월 이상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지금 하시는 일에 ‘올인’하시길 바랍니다.” 수학과를 다니는 어느 대학생이 나에게 하소연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단다. 수학과를 지원하긴 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전공이 자신에게 적합한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내가 물었다. 한 학기 이상의 시간을 전공 공부에 몰입한 적이 있느냐고. 그가 고개를 젓는다. 나는 다음과 같은 부탁의 말을 건넸다. “전과를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단지 전공을 바꾸는 과정에서 수학이 싫어서라는 이유만으로는 부족하다. 수학이 왜 싫은지, 어떤 점이 나와 맞지 않은지를 알고 난 후에 전과하라. 문제의 정답이 하나뿐인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정답이 있는 문제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를 돌아보라. 좋아하는 일을 통해서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만, 싫어하는 일을 통해서도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비록 자신과 맞지 않은 일이었다 하더라도, 그 일도 자기를 발견하는 기회가 된다는 말이다. 몰입 없이 전과를 선택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조금만 힘들면 타협하고 포기하고 마는 약점을 가진 사람들이다. 물론 정말 자신과 맞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전과를 두고 갈팡지팡하는 이 대학생의 고민은 20대 후반에도 30대 중반에도 이어진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잘하고 어떤 일을 좋아하는가? 이러한 성찰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삶 가운데 몰입의 기간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몰입은 성찰의 재료인 것이다. 몰입하지 않은 삶은 성찰해야 할 것이 아니라, 개선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성찰’이라는 단어를 ‘진짜 자신을 발견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는 사고과정’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몰입할 수 있다. 감정은 의지의 시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정적인 감정은 얼마든지 컨트롤 가능하다. 몰입에는 즐거움이 있다. 우리 삶에 몰입이 추가될 때, 삶의 질이 개선되며 일의 성과는 높아진다. 싫어하는 일에도 몰입할 수 있다면,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힘든 일도 마찬가지다. 나는 만 25살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입대하였다. 당시에 나는 이런 글을 썼다. 이해인 수녀님이 법정 스님에게 보낸 편지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사소하고 작은 일들도 ‘의무’보다는 ‘사랑’을 넣어서 기쁘게 하는 마음을 키우다 보면 하루하루가 작은 축제로 피어남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소하고 작은 일들’이란 말 대신 ‘국방의 일’이란 말을 넣어보자. 그대로 (이등병인) 내가 적용할 만한 근사한 명언이 된다. 나는 최대한 성실하고 정직하기 위해 노력하리라. 명령에는 절대 복종을 하려고 애쓰며 정직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자. 성실한 자에게는 보람이 있다. 육군훈련소장님이 오신다고 전 부대원이 식당 청소를 했을 때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하여 일했다. 보이지 않은 곳까지 수세미로 싹싹 닦아냈다. 청소가 끝난 후, 나는 붉게 물든 석양 속에서 보람과 기쁨을 발견하였다. 비교적 힘든 일을 맡게 된 나에게 같은 소대의 전우가 “줄 좀 잘 서이소”라고 말해 준 것까지 퍽 고맙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백수들의 삶은 게을러지기 쉽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만 찾아서 하기 쉽다. 편식을 하듯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들만 쏙쏙 골라서 하다보면, 자신을 다양한 가능성의 잣대로 평가할 수가 없다. 반면, 직장인들은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 한다. 때로는 생산성이 높지 않은, 그러면서도 하기 싫은 일까지 처리해야 한다. 이때가 자신이 어떤 일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 수 있는 찬스다. 또한 몰입을 훈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누구나 잔잔한 호숫가에서 낚시질을 할 때에는 평화로울 수 있지만, 불편한 상사가 있고, 산더미같이 쌓인 일 속에서 평화를 누리기란 쉽지 않다. 만약, 평화의 사람이 되고자 스스로를 훈련하고 싶다면 호수가 아닌 직장으로 가야 하리라. 진정 평화의 사람은 어느 곳에서든 마음의 안정을 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만족스럽지 않은 지금, 몰입의 기술을 발휘하라. 의지로 부정적인 감정을 복종시켜라. 혼신의 힘을 다하여 하루를 살라.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자서전 제목을 가슴 속에 새겨라. “Why not your Beat?"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성찰은 몰입의 완성이다. 몰입하는 삶을 완성하는 것은 자기 성찰이다. 몰입 후의 자기 성찰은 자신을 발견하는 최적의 과정이다. 이 과정을 피드백 분석이라고 해도 좋고, 자기 성찰이라고 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한 자신의 삶을 정기적으로 돌아보고, 성과를 들여다보고, 일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점검한다는 개념이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론 네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모두 적어보라. 10가지가 되어도 좋고, 100가지가 되어도 좋다. 작성한 모든 일을 좋아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로 구분하라. 그 일을 할 때 느껴지는 기분을 생각하며 작성하라. 행복한지, 아닌지를 구분하여 일을 나눠보는 것이다. 100가지 중에 30가지가 행복한 일일 수도 있고, 50가지가 행복한 일이 될 수 있다. 정직하게 자신의 기분을 따라 작성하면 된다. 작성이 끝났으면, 좋아하는 일들의 공통점을 찾아내고, 싫어하는 일들은 어떤 일인지, 왜 싫어하는지를 생각해 보라. 이제 해야 할 일은 다음 직장, 다음 직무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보다 늘려갈 수 있는 포지션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 자리가 없으면 만들어서 가면 된다. 이렇게 하여 조금씩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늘려가라. 당신이 해야 할 모든 일이 좋아하는 일들로만 채워지게 되면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늘려가는 과정 자체에서도 행복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둘째, 분기마다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라. 이력서에 그럴듯하게 한 줄 채워 넣는 것보다 소중한 일은 많다. 하지만, 직장인으로서 이력서에 채워 넣을 경력을 만들지 못하는 인생도 아름답지 못하다. 이력서가 화려할 필요는 없지만, 초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일정기간의 몰입을 한 후에는 이력서를 꺼내 업데이트해 보는 것이 좋다. 자극을 받게 되고, 다시 한 번 방향을 점검하게 된다. 3개월 혹은 한 달, 자신에게 맞는 기간을 정하여 정기적으로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길 권한다. 셋째, 피드백 분석을 하시라. 이것은 피터 드러커가 제안한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에는 기대하는 성과를 미리 써 두고, 몇 개월 후에 그것을 실제 성과와 비교해 보는 것이다. 이것은 성과의 측면에서 자신의 잘하는 분야를 발견하게 되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라. 배우자와 가족, 친구, 또는 가까운 동료들에게 자신에 대한 의미 있는 질문을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이다. 질문은 정답을 구하기 위해 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다. 최선을 다하지 않은 과제에 대해 피드백 하는 것은 스승에게는 시간낭비이고, 제자에게는 무의미한 일이다. 몰입과 성찰은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피드백 하는 과정이다. 몰입은 피드백 거리를 제출하는 것이고, 성찰은 피드백을 하는 것이다. 피드백을 할 거리가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보다 나은 삶을 만들어가는 성찰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철학이 없는 인생은 위험하다. 하지만, 인생을 몽땅 철학으로 대체해서는 무기력해진다. 몰입은 행동이고 성찰은 철학이다. 우리네 삶을 몰입과 성찰로 채우자. 실천과 철학의 조화를 지향하자. 자신감과 확신 몰입과 성찰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고 의미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를 지속적으로 행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많다. 한 마디로 삶이 변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소원하였던 것들을 얻거나 이루게 될 것이다. 희소한 자원일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우리 시대의 희소한 자원은 무엇인가? 피터 드러커는 시간을 언급했고, 공병호는 자신감을 들었다. 몰입과 성찰은 자신감을 안겨다 줄 것이다. ‘나에게는 기댈 곳이 있다’는 안도감에서 비롯된 자신감은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자신감이 아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진정한 자신감이다. 중요한 말이다. 자녀교육전문가인 조선미 박사는 아이의 자아상 확립을 위해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느끼도록 만들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를 위해 ‘나는 유능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자녀교육의 목표라고 말했다. 몰입과 성찰을 통해 굳건한 자신감을 쌓아가라. 자신감은 한 번의 큰 성공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크고 작은 성공의 경험과 지속적인 자기만족이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이어질 때 생겨난다. 자신감은 단순히 시간이 지난다고 자라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을 신뢰하는 것만큼 자라난다. 신뢰할 만한 스토리가 삶 속에 풍성한 만큼 자라난다. 자신감은 중요하다. 할 수 있다고 믿든, 할 수 없다고 믿든 자신이 믿는 대로 되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몰입과 성찰, 이 두 가지 키워드를 가슴 속에 새겨 넣어라.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나는 진정으로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고 싶다. 지금의 자기 모습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역시 좋다. 나는 그들의 삶의 태도를 존중한다. 진정, 성공은 자기가 정의하는 것이니까. 가장 나쁜 것은 만족하지도 않으면서, 변화되기를 바라면서 날마다 같은 모양으로 살아가는 태도이다. 나는 그러한 태도를 증오한다. (오해 없길 바란다. 그러한 태도를 가졌더라도 사람은 여전히 좋아한다.) 혹시, 나와 같이 그런 태도를 증오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여러분의 삶에 몰입과 성찰을 조각해 보시길 바란다. 이 글의 결론, 몰입과 성찰을 꾸준히 반복하여 보시라! |